우리는 한 평생 자신 스스로와 살아가게 됩니다. 타인들은 만날 때도 있지만 안 만날 때도 많죠. 그러나 자기 스스로는 절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의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타인에게 분노, 기쁨등 모든 감정을 표출합니다.

 

자신을 생각하는 시간보다 타인에 대해 생각하시는 시간이 더 많으며, 타인의 성격보다 자기 자신의 성격을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나는 어떻게 생긴 인간일까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이는 외형적인데 초점이 있는게 아니라 내면적인 곳에 초점을 둔 질문입니다. 외형적인 것은 너무 심플하고 쉽습니다. 거울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자신이 어떻게 생긴 인간인지쯤은 판단됩니다.

 

자신의 내면적 생김새에 대해서 알려면 자신이 어떨 때 슬퍼하고, 자신이 어떨 때 기뻐하며, 자신이 어떨 때 분노하는지,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서는 어떻게 판단하고 해답을 찾는지에 대해 곰곰이 되뇌어 보면 자신의 내면적 생김새에 대해 얼추 알 수 있습니다.

 

본인 내면의 생김새를 알아야 자신이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수 있고, 그게 명확해지면 호불호가 생깁니다. 호불호는 자신의 취향이라는 것을 만들고 취향은 곧 개성이 되며, 이렇게 취향과 개성을 아는 인간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고 행동해나감으로써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죠.

 

저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강한 몰입을 가지고 있는.. 흔히 말해 오타쿠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이 좋아하는게 뭔지 몰라 타인이 하는 것들만 쫓아가면서 하는 사람들 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거기에 몰입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훨씬 행복하다고 단언합니다.

 

 

자신의 내면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주어졌던 상황들과 과거들에 대한 해석이기 보다 앞으로 경험할 내용들이 더 중요합니다. 과거의 경우 왜곡과 리메이킹으로 각 종 색깔들이 덫칠되어 그 당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정확히 판단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외형적 모습이 변하듯 내면의 모습도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과거의 나의 감정과 생각들이 지금의 나와 같다고 판단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외형적인 변화를 인정하듯 내면적 변화도 인정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앞으로 경험하는 일들에 대해서 자신의 감정에 민감하셔야 합니다. 만약 싫어하는 감정이 들었다면 굳이 이성으로 좋게 생각하실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호불호와 취향이 명확해 지고 난 뒤에 이해해주셔도 상관 없는 일입니다.

 

섣불리 자신의 감정을 이성으로 포장하다간 평생 어떻게 내면이 생겨먹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이 명확해지면 타인의 취향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생깁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서구권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타인에 대해 관대한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도 취향이 있듯 타인의 취향도 인정해주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사촌이 땅사도 배아픈 나라입니다. 타인에 대해 이렇게 관대하지 못한데에는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주의의 부제가 때문이라 봅니다. 타인의 취향과 생각에 대해 인정해주지 못하는데에는 자신의 취향과 생각이 없어 타인과 집단의 가치에 너무 매몰되기 떄문이 아닐까요?

 

다양한 일들에 대해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다보면 자신이 어떨때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알게되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을 알게 됩니다. 경험에 대한 생각들은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알게해줍니다. 앞으로는 자신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감정과 생각들에 대해 좀 더 민감하게 받아들여 자신에 대해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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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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