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기계발/행동

현실에서의 실천적 차원

 

 

삶을 살아가다보면 계속해서 선택의 갈래에 놓이게 됩니다. 그 갈래에서 보통 고민을 하다가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그 선택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죠. 이래서 인생은 일방통행로라는 말이 생겼나 싶습니다.

 

이런 지점에서 선택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만약 내적 갈등에 대한 선택이나 순수한 사유 속의 선택이였다면 또 그것이 아무런 실천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그저 관념에 지나지 않으니 인생에 있어서 그리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실천을 해야 하는 선택일 경우, 가령 어떤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의 경우에도 실천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을 현실에서의 실천적 차원이라 생각합니다. 실천적 차원에서의 선택은 '실천'을 반드시 동반해야 하며, 그 실천을 하지 못했을 때는 합리화를 하기 보다는 자신의 나약한 의지를 탓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현실에서의 실천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모든 문제 해결은 그 사실을 그대로 직시하는데 있으며, 안타깝게도 인간은 스스로를 믿고 싶은대로 믿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상상할 수 있는 존재여서, 이런 부분에서 많이 약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간 이성에 대한 비판이 근대에 들어오면서 부터 계속 이어지는 것이고요.

 

다시 현실에서의 실천적 차원으로 돌아와 얘기를 이어가자면, 선택을 할 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불가능해보이는 선택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머릿 속에서는 그 어떤 것이든 너무나 쉽게 상상할 수 있으며, 생각하는대로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A와 B라는 선택지를 가지고 머릿 속에서 고민한다면, 두가지 방법 중 무얼 하나 선택하더라도 그걸 상상해내기는 쉽습니다. 간단히 말해 머릿 속에서는 하기 쉬워보였는데 실제로 해보면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머릿 속에서의 이론은 50보와 100보가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적 차원으로 들어서게되면 10보, 11보, 12보 모두 다르게 됩니다. 결코 머릿 속에서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생에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또 스스로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않고서 선택을 한다면 그건 공허한 선택일 뿐이며, 또 다른 자기 포장을 낳는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혹은 자신이 실천하지 못한 이유를 현실 탓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현실은 그대로인데 현실을 엄청난 장벽처럼 상상하며 자신이 실천하지 못함을 현실탓으로 돌리는 것이죠. 뭐 벽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실에서는 뭐든 1 다음에 2가 오는 법인데.. 관념적 차원에서 생각할 때는 1에서 바로 50, 100으로 가기가 상당히 쉬웠으니.. 현실의 장벽이 높게 느껴질만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에 매달려 통곡하기 전 스스로 너무 자만하지는 않았는지, 자기 자신에 대해 정말 있는 그대로 보았는지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실천할 것 처럼 떠들고 다닌다면 허언증 혹은 허세 정도로 밖에 비춰지지 않으며, 그런 사실을 누군가가 직시 했을 때는 말 뿐인 사람이 되기 쉽상입니다. 실천적 차원에서 얘기할 때는 가장 염두해야할 부분은 할 수 있는가라는 부분이며, 두 걸음을 가기 위해선 첫 걸음부터 떼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 또한 인지해야 합니다.